[김천대학, 향토식품개발연구보고서 제4권 中 자두의 역사적 고찰 및 재배현황 부분 발췌]
우리나라 자두나무는 <예기(禮記)>에 이미 “복숭아와 오얏,살구,매실을 임금께 진사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시경(時經)에 주나라 시대에는 꽃나무로서 매화와 오얏을 으뜸으로 쳤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가져다 심은 수입나무로 본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 도선(道詵)국사가 쓴 <도선비기(道詵秘記)>에 “고려왕(王) 씨에 이어 이(李)씨가 한양에 도읍 한다(繼王者李而都於漢陽)”는 예언기록으로 보아 우리 나라는 신라시대부터 자두나무(李)를 심었음을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복사나무와 자두나무는 도리(桃李)라 하여 모두 한꺼번에 표기되었 으며 신라 파사니사금 23년(102), 나해니사금 8년(203), 진흥왕 원년(540), 경문왕 3년(863)과 고구려 고국양왕 3년(386), 문자왕 3년(493),안원왕 10년(540) 및 백제 온조왕 3년(BC16)조에는 모두 <겨울 10월,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로 기록되고 신라 경덕왕 22년(763)조에는 <8월, 복사나무와 자두나무에 두 번째 꽃이 피었고,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신비기(道詵秘記)에서 500년 뒤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는 예언으로 인하여 고려 조정은 예민한 반응를 보여 고려 중엽부터 한양에 별리목사(伐李牧使)를 두고 백악(白岳 지금의 북한산)에 오얏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 할 때면 반드시 모두 찍어서 이씨의 기운을 눌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명종 때의 학자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 문집에는 「꽃을 향한 마음은 은혜 로운 바람에 놀라고, 새 소리에 온하한 기운을 느낀다. 붉은 빛은 복숭아를 물들이 고, 희디힌 빛은 닦은 오얏을 찾는다」는 등의 오얏에 관련된 시가 여러 편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자두나무를 많이 재배했다고 본다.

무학이 도읍지를 정하려고 만경대의 맥을 밟아 남으로 가다가 비봉에 이르렀을 때 “무각은 이곳에 잘못 이르렀다” 라는 도선의 비석을 발견하고 되돌아가 백악에 이르 니 삼맥이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명당이라 그 아래 궁성의 터를 잡았다는 설이 있으며 그곳이 바로 고려 조정이 신경을 쓰며 오얏나무를 베던 자리로서 1970년대 까지 바로 서울 자하문 밖은 자두나무 명산지였다고 한다.

이 왕가의 문장은 오얏나무꽃(李花)이며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澱)은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건물로 용마루에는 조선 황실의 문장인 청동제 자두꽃 다섯 송이가 박혀 있는데 넷은 왕을 말함이고 다섯은 황제를 상징한다.

1988년 우리역사상 최초로 시작된 우정사업은 1905년 통신권이 일본에 빼앗길 때 까지 54종의 보통우표를 발행하게 되었는데 이 우표에는 이왕가(李王家)의 문장인 오얏과 태극이 주조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화우표(李花郵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의 백동으로 만든 화폐에도 표면의 위쪽에는 오얏꽃, 오른쪽에는 오얏나 뭇가지, 왼쪽에는 무궁화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렇게 역사와 의미가 담겨진 오얏이지만 재래종 자두나무는 알이 작고 맛이 극히 시기 때문에 우수 신품종이 심어지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자두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해 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나 김천지방에 는 고려시대인 12세기말경 서하 임춘(1147~1197)이 개령현 대곡(한골. (현재)아포읍 대신리)에 은거하면서 남긴 서하집(西河集)에 기록이 남아 있다. (김천대학, 향토식품 개발연구보고서 제4권 中 김천자두의 역사와 현황 부분)

장검행이란 시중 「오얏 담근 이리주 한골로 내려」란 구절에서“자두로 술을 담가 먹었다”는 것은 자두가 그만큼 많이 재배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1980년 이전에는 자두가 과수 기타 품목에 포함되어 통계청 및 농산물품질관리원, 김천시 통계연보에 자두의 재배면적 및 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적 자료가 없으며 1980년부터 2007년까지 김천시에서 재배한 자두의 연도별 생산량 및 재배면적을 살펴보면, 김천자두의 생산량과 재배면적은 1970년 이 후 꾸준히 증가하였고 2006 년부터는 소폭 감소하였다.

현재 재배중인 신품종들의 도입은 1948년 농소면 월곡리 못골농원 이오덕씨가 일본에 서 도입, 재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천대학, 향토식품개발연구보고서 제4군 中 김천자두의 역사와 현황 부분]

연도별 김천자두 재배면적 및 생산량
구 분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06 2007
재배면적(ha) 45 55 95 862 1,469 1,529 1,204 1,151
생산량(M/T) 207 712 454 8,065 12,684 13,202 12,386 11,433
주)자료: 통계청, 과수실태조사 및 김천시통계연보

자두품종별 수령별 재배면적
구분 대석 포모사 올담
(수박자두)
산타로사
(홍자두)
추희 피자두 기타
5년미만 142 79 37 0 6 7 3 11
5~20년미만 942 506 307 7 42 17 39 24
20년이상 67 6 44 1 8 0 6 2
1,151 591 338 8 57 24 48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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